族譜硏究資料




안락당집에 대한 잘못된 주장
작성자 : 延松齋 작성일 : 2017-09-15 15:43:54       조회수 : 784 파일 :

원성종중홈피에서 동희라는 분이 안락당집에 대하여 왜곡된 주장을 하고있습니다.
동희씨의 글은 체계가 없고, 앞뒤가 연결되지 않아 정확한 뜻을 이해하기가 지극히 어려우나, 동희종친이 안락당집에 대하여 조사한 내용과 주장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1. 영인저본(影印底本)
* 영인저본(影印底本) - (권1,권2;서강대학교도서관 권3,권4충남대학교도서관)
* 影印底本 - (권3,권4 충남대학교도서관본 = 複寫本所藏함)
* 안락당집(影印底本) ~ 충남대학도서관 3,4권(서강대도서관 1,2권)은 씨족원류 및 기해보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족보가 그대로 실려있다.

★2. 필사본(筆寫本)
* 筆寫本(국립중앙도서관소장)을 가장 信賴함.
* 필사본(筆寫本) - (국립중앙도서관소장)
* 국립중앙도서관(筆寫본)에는 분명히 始祖博士公의 祖子孫 系譜가 없다

★3. 필사본 일질이 서울대학교 규장각 도서(귀중본)부에 있다
삼책팔권으로 분책,내용은 동일하나 장정과 필적이 조잡한데다가 광곽과 계선이 없고 수인의 필치이다
표제도 후인의 손으로[안락당시집]이라 쓰고 표지에 부전이 있는데 [간당무고사사 후손불긍출세 차본기사 세인부지] [김안로 연안인 자이숙 호희락당 중종조우상 시윤해증손]이라 써있어서 관계자들은 유일본 이라고 알았던 터이다
筆者 藏本과 對照한 結果 前者는 本 寫本의 轉寫本임이 立證되었다

★4. 印刷本의 重刊本
* 1905년<고종42년-광무9년>顔樂堂集重刊, 希樂堂集編次 未刊으로 宗孫家에 保存)
* 印刷本의 重刊本 ((坤卷) = 失傳)
* 印刷本의 重刊本 (乾卷(本人所藏함)이 다른 곳에는 없다.
* 印刷本(本人所藏) 乾卷=總32枚~ 光武乙巳秋 7月癸酉 11代孫 龍秀謹書
癸酉7月日 晋州姜渾序
* 重刊本(乾卷) ~ 顔樂堂集卷之一 (구입소장) ~ 11代孫 進士 龍秀考訂, 宅秀, 東秀參考,
13代孫 參奉 思儀, 參奉 思羲 編次. 題顔樂堂詩集後 ~洛西 李沆

★5. 顔樂堂集 希樂堂集
* 1964년 필자(김일근)가 顔樂堂集稿本, 重刊本, 希樂堂稿 입수
* 顔樂堂集 希樂堂集 下卷 ~ 1966年 1月 13日 登錄, 1974年 4月 1日 發行 郭鍾元, 所藏者 金一根 (本人所藏 )

★6. 顔樂堂集~原刊初卷은 찾을수 없다
* 顔樂堂集~原刊初卷은 찾을수 없다 ~ 글씨체는 틀릴 수 있으나 내용까지 똑같지 않다
* 原刊初卷이 발견되면(일본, 불란서 귀중본 반환 시) 구체적인 역사가 밝혀질 것 이다.
* 南袞이 顔樂堂集을 削除했다- 原本의 原作은 削除되어서 없다
* 原刊初卷(33卷)-初刊本이 없다
* 안락당집의 初刊本이 없다
* 仁祖10年 張維가 重刊序文을 붙일때 原刊初卷(33卷)이 出現해야만 알겠지만“이라고 했으나. 南袞削除 - 金龍秀新添의 소용돌이 속에 原本은 없다
* 延安金氏始祖史의 根幹源流 ~ 머리,꼬리가 잘려나간 만신창이 상처투성이 顔樂堂集
* 당쟁속에 내적인 잘려나간 절름발이 반쪽의 선조글.....에 얽매여 자가 당착의 아집 고착화의 모순 청산을 하지 않음은 결국 고려시대 그 어디에도 시조휘자가 나오지 않으니 곤쟁(袞貞)이에 의해 머리와 꼬리가 없어진 안락당집 내용만을 내세워 밀고 나간다면 혹 진실일지 모르겠으나 결코 아무도 속지 않는다
* 방명록에 올린 자료를 분석해보면 - 글씨체가 틀리고 또 한부는 연활자본으로 특히 두번째의 世系에는 ~ 박사 휘와 아들,손자의 휘, 관직등은 너무나도 차이가 또렷하다
* 반쪽 안락당집의 선계는 백번을 강조해도 잘려나간 변질된 연안김씨시조사 앞으로 찾으면 찾을 수록 훼손 안된 문헌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7. 글씨체는 틀릴 수 있으나 내용까지 똑같지 않다
* 안락당집 두 종류 (처음, 끝부분이 똑같지를 않습니다)
(筆寫本)
卷之四(詩,忍性錄,皆謫中作 - 梅花詩次韻四首)~早起;自可了危艱 閑境自佳.
顔樂堂集 마지막장 끝부분 ~不愼屬垣之 戒俱及于 禍言之 不可不愼 如是哉
(影印底本)
卷之四(遺行,先胡簡公嘗言 是兒英物 但恐不久於世 盖公生之夕夢....)
顔樂堂集 마지막장 끝부분 ~奉正大夫行郡守 權五紀 皇明正德丙子 孟秋 榮川郡開刊

본인의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1의 영인저본이라고 표현하신 것이 바로 안락당집 초간본입니다
* 1516년에 영천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하였습니다.(권4 말미에 “奉正大夫行郡守 權五紀 皇明正德丙子 孟秋 榮川郡 開刊”이 그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 “씨족원류 및 기해보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족보가 그대로 실려있다“고 하셨는데 안락당집은 1516년에 간행한 것이고 씨족원류 및 기해보는 그로부터 100년 200년 후에 간행한 것입니다. 따라서 안락당집은 씨족원류 및 기해보가 정확한 기록이라는 것을 고증하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2의 필사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고 하셨는데
* 국립중앙도서관에는 안락당집 필사본을 소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 안락당집 필사본은 현재 개인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 “1964년 필자(김일근)가 顔樂堂集稿本, 重刊本, 希樂堂稿 입수“라는 종친의 글 중 ”顔樂堂集稿本“이 중간본 간행 시 고본인 필사본을 뜻하는 것입니다
* 국립중앙도서관에는 안락당집 초간본 곤책(坤冊) 즉 권3, 권4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안락당집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3의 “필사본 일질이 서울대학교 규장각 도서(귀중본)부에 있다“고 하셨는데
* 서울대학교규장각에는 안락당집이 아니라 희락당 김안노공의 문집인 희락당고 필사본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희락당고 필사본은 후손가에 비장되어 오던 희락당고 비장고본을 필사한 것으로 특이한 것은 권말에 안락당집 권3, 권4에 있는 세계, 계보 등을 희락당별고라는 제하에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 “筆者 藏本과 對照한 結果 前者는 本 필寫本의 轉寫本임이 立證되었다”라는 김일근 교수의 말과 같습니다..
* 희락당이 윤원형의 무고로 죄인이 되어 사사된 관계로 희락당고는 공간되지 못하고 희락당의 후손가에 필사본으로 비장되어오던 것을 김일근 교수가 인수하여 안락당집과 합집으로 해제를 붙여 간행하였습니다(★5의 "顔樂堂集 希樂堂稿" 참조)

★4의 1905년 연활자본으로 간행한 重刊本은 김일근 교수가 유일본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동희 종친이 어렵게 구하여 소장하고 계시다니 축하드립니다. 연김의 후예로서 대종회에서도 못하는 일을 하셨으니 큰 영광입니다. 복사본이라도 한 부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 졌으면 합니다.

★5의 "顔樂堂集 希樂堂稿"는 김일근 교수가 안락당집과 희락당고를 합집으로 해제를 붙여 영인출판한 것으로 여러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대출도 가능한 책입니다.

★6의 “顔樂堂集~原刊初卷은 찾을 수 없다”이하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 안락당집 초간본 권1, 권2는 서강대학교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서강대학교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안락당집 권1, 권2의 이미지를 직접 보실수 있습니다. 보관상태가 좋은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 특히 “南袞이 顔樂堂集을 削除했다 - 原本의 原作은 削除되어서 없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성립되기 어려운 주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原刊初卷(33卷)-初刊本이 없다”, “仁祖10年 張維가 重刊序文을 붙일 때 原刊初卷(33卷)이 出現해야만 알겠지만이라고 했으나”는 두시언해 중간본 간행과 관련된 내용으로 안락당집과 연관 시킬 수 없는 말입니다.
* "만신창이 상처투성이 顔樂堂集", "절름발이 반쪽의 선조글" 등 일부 표현에 감정이 개입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연구는 객관적인 관점에서 하시는 것이 바람직하고, 주장에 앞서 논리적으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야 하지않을까 생각합니다.

★7의 “안락당집 두 종류 (처음, 끝부분이 똑같지를 않습니다)”라는 주장은
* 안락당집 초간본과 필사본의 편차의 차이를 생각하지 않고, 같은 숫자의 권수와 페이지를 비교하신 때문입니다
* 영인저본이라고 표현하신 초간본 권1을 필사본에서는 권1, 권2로 나누어 편철하였고, 초간본 권2를 필사본에서는 권3, 권4로 나누어 편철하였습니다(초간본 권3, 권4가 필사본에는 없습니다)
* 초간본과 필사본을 처음부터 비교해 나가면 내용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더구나 위 주장은 희락당고 권4와, 안락당집 권4를 비교하신 것으로 내용에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안락당집과 희락당고는 전혀 다른 책입니다.

리스트

안락당집 희락당고
고려시대 호부(戶部)의 직제 변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