族譜硏究資料




增補文獻備考氏族編 延安金氏와 有關條에 杜撰이 있다
작성자 : 延松齋 작성일 : 2017-09-15 15:51:25       조회수 : 878 파일 :

增補文獻備考氏族編 延安金氏와 有關條에 杜撰이 있다


 

자료출처 : 延安金氏大宗會報 제89호 1987년 7월 10일(금)

增補文獻備考라는 古典이 있다
이冊은 1770년 영조46년 奉朝賀職에 있던 洪鳳漢(正祖의 外祖)으로 東國文獻備考 100卷編纂 頒布가 初版, 1782년 정조6년 李萬運 儒學者가 增補東國文獻備考146권 增補, 1903년 撰集廳 設置 奎章閣提學 朴容大外 3천명을 編輯者選拔 250권增補, 1908년 出版頒布하였다

大姓으로 꼽히는 各氏族의 世系編入 그후 發刊된 姓氏關係書籍들은 이책에서 取材 著述된 것이다
增補文獻備考氏族編 延安金氏와 有關條에 杜撰이 있다
延安金氏編에 들어 갔어야할 [裕簡 金紫光祿大夫知門下省事爲一派]라는 句節이 金海金氏編에 編入된 것이다

增補文獻備考를 編輯할 무렵에 發刊된 우리族譜는 己亥譜(1719년) 乙酉譜(1765년) 庚午譜(1870년)등이 있었는데 奎章閣藏書 된것은 乙酉譜(1765년)뿐 이었으므로 增補文獻備考도 여기서 取材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族譜를 살펴보면 己亥譜와 庚午譜에는 始祖金暹漢, 二世俊龜, 三世諱字磨缺로 空欄, 四世裕簡, 五世大義. 六世伯,實, 七世信劒으로 世系가 明記되어 있고 三世만 諱字未詳인 것이 確實하니 잘못 옮겨 쓰여질 素地가 全然없다

奎章閣에 藏書된 乙酉譜에는 三世의 諱字磨滅을 理由로 三世錄欄에 [見別錄]이라 記錄 以下 空欄으로 둔 대신 同譜冊三卷(人)83면(文)에 別錄이라 題하고 此關西派는 前에 裕簡을 始祖로 삼았는데 己亥譜時 龍崗金義儉家의 私譜에 依하면 裕簡公은 始祖博士公의 曾孫行 이라고 해서 原譜에 編譜를 했었는데 三世의 諱字가 磨缺된 險이 있으므로 이번에 別錄으로 옮기려 하나 그 子孫들이 別錄으로 하는 것을 不應 하므로 數代만을 記錄한다‘ 라 하여 무슨 軋轢이 있었던것 같은 印象을 풍기나 表出되지 않아 그 內幕을 알수 없고

譜編은 始祖 金 0 漢. 二世 俊龜. 三世 諱字磨缺. 四世 裕簡 金紫光祿大夫知門下省事. 五世 大義로 되어있는바 二世 以上의 原譜와 같으니 裕簡公의 一派가 따로 있는것 같이 보이며 그들이 裕簡을 始祖로 삼았다 云云 했으니 그런 印象을 더욱 짙게했다

그러나 金海金氏族譜의 어느 곳을 찾아 보아도 裕簡 이라는 諱字를 가진 祖上을 發見할수 없을뿐 더러 惟獨 增補文獻備考 에서만 金海金氏始祖首露公 下段에 裕簡 金紫光祿大夫知門下省事 爲一派 라고 記錄되어 있으니 族譜에 登載되지 않은 子孫이 하늘에서 떨어졌단 말인가 땅에서 솟았단 말인가?
이는 編輯上 錯誤로 杜撰이 된것이 分明하다 더욱이 마땅히 延安金氏編에 記錄 되었어야 할 이 句節이 延安金氏編에는 빠져있는 것으로 보아 더 疑心 할바가 없다
따라서 裕簡 이라는 人物과 金海金氏와는 何等의 關係도 없는 것이 確實하다

所謂 古典이라는 冊에 우리氏族과 有關한 部分에서 杜撰이 많다는 것은 75호및 76호에서 指摘한바 있지만 이것은 著述者들의 粗著濫刊에 起因하는 것이라 손 치더라도 적어도 國家事業으로 編輯된 增補文獻備考에 杜撰이 있다는 것은 실로 遺憾된 일이라 아니할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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