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김씨와 강릉김씨의 조상형제지간설(祖上兄弟之間說)에 대한 고찰
연안김씨와 강릉김씨는 윗대 조상이 형제지간이어서 서로 호종(呼宗)을 함은 물론이요 피차 혼인을 해서는 아니된다라는 설화(說話)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전하여져 왔고 또 이 말이 일부지방에서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우리 연안김씨 측에만 퍼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강릉김씨 측에도 널리 퍼져 있다.
우리 연안김씨 족보서두를 보면 이와 같은 말이 의당 나올 만 하다. 왜냐하면 우리 족보에 “金氏系出新羅宗姓初兄弟二人在國直諫오王流遠地遂除籍兄居北濱京弟居시鹽城因家焉”이라고 써져있으니 즉 “김씨는 신라의 왕족으로 당초 형제 두 사람이 왕에게 직간을 하다가 도리어 왕의 노여움을 사서 형은 북빈경(지금의 강릉) 아우는 시염성(지금의 연안)으로 귀양을 가서 살았다”라고 하였으니 연안으로 간 아우의 자손이 연안김씨가 되었다면 강릉으로 간 형의 자손은 의당 강릉김씨가 되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유추해석(類推解釋)을 할 수 있고, 더구나 을유보 서문에는 강릉김씨라 꽉 박아 놓음으로서 한층 더 논거를 굳혀놓았다.
그러나 이상은 우리 연안김씨의 족보와 문헌상에서 나온 말이요 상대방이라고 할 수 있는 강릉김씨의 족보상에는 그 시조발상(發祥)이 우리족보에 기재된 사실과 같지 않은데 문제가 있다. 강릉김씨의 시조인 김주원(金周元)은 신라태종무열왕(新羅太宗武烈王)의 6대손으로 신라 37대 선덕왕(宣德王)이 죽은 뒤에 일시 그 후계임금으로 추천되었다가 일이 여의치 않아 강릉(江陵)으로 퇴거하였는데 후에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봉해진 것으로 기록되어있고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그와 같이 기록되어 있으니 강릉 김씨시조에 대하여는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우나 형이 있었다는 기록을 찾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강릉김씨의 강릉낙향(江陵落鄕) 동기가 우리 조상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하여 일부에서는 상고사(上古史)는 원래 오래된(거금1200년)기록이어서 김주원이 신변이 위태로워 강릉으로 내려갔다면 그 형제들도 역시 같은 이유로 연안 등으로 퇴거를 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강릉김씨의 족보에 그의 아우기사가 실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우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하는 유추설(類推說)도 있다. 그러나 그 이론은 그럴 수도 있다는 개연성(蓋然性)을 말하는 것이지 꼭 그렇다는 확연성(確然性)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선인들께서는 항상 상조에 대한 궁금증을 버리지 못하고 을유보 이후 수백년 동안에 걸쳐 그 이상의 선대사(先代史)를 밝혀내려고 애는 써 왔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근래 상고사에 대한 논의를 자아내게 하는 두 가지 문적(文籍)이 나왔으니 그 하나는 지금 국립중앙도서관(國立中央圖書館)에 장서(藏書)되어 있는 신라김씨선원보(新羅金氏璿源譜)다. 이 서적에는 강릉김씨 시조 김주원에게 내흥이라는 아우가 있어서 그 십대손 지주(支柱)까지 등재되어 있다. 이 선원보는 1934년 경주김씨 김교성(金敎性)이라는 사람이 간행한 것인데 그 보서의 서문으로 보아 초판(初版)은 정종(正宗)8년(1784)에 경주 김한록(金漢祿)이 편찬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그 근거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다고 본다.
또 한 가지는 양양공수기(襄陽公手記)이다. 24世 양양부사(襄陽府使) 흥기공(興基公)이 지난 신축(辛丑)(1901)년에 자신이 간행한 의민공파파보(懿愍公派派譜) 가운데 자신이 보관하고 있는 보첩 제 3권 최종면 여백(餘白)에 전기 신라김씨선원보에 있는 내흥(奈興)의 10대손 아래에 또 8대를 추가기록(追加記錄)하여 마지막대를 박사공의 휘자인 섬한(暹漢)으로 이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내흥의 십대손 지주(支柱)까지는 신라 김씨 선원보에서 옮겨 썼다고 보더라도 그 아래 팔대는 어느 문헌에서 나왔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점에서 이를 긍정(肯定)할 수도 없고 또 전연 무시해 버리기도 아쉬운 입장이다.
오직 후일 좀더 정확한 문헌과 확고한 고증을 탐구하여 분명한 상대(上代)를 밝혀 낼 것을 우리씨족의 숙제로 남겨두고 지금 현재로서는 가부결단을 말하지 않음이 옳을 것으로 생각한다.
